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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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64v4qp/my_flight_got_rescheduled_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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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도와줘. 너무 무서워.

어젯밤 나는 평소처럼 캐리어에 짐을 쌌어. 평범한 반바지랑 티셔츠 몇 개랑, 수영복 두 개, 쪼리 슬리퍼, 그리고 타겟의 여행 코너에서 산 미니 세면도구 세트. 운동화랑 스포츠브라도 있었어. (난 운동을 좋아해서 휴가가서도 운동을 해. 축복이자 저주라고 할 수 있지.)

아이패드랑 간식이 든 백팩을 매고는 문을 나섰어. 남자친구가 공항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좀 심통이 나긴 했어. 내가 여자인 절친이랑 같이 주말을 보내기로 해서 약간 질투하고 있었거든. 내가 걔랑 같이 며칠을 보내기로 한 거 때문이 아니라, 그 며칠을 마우이에서 보내기로 한 거 때문에 말야. 뭐 이해가 가긴 해.

남친은 날 공항에 내려주곤 같이 짐가방을 내려 줬어. 날 보내기 전에 길게 키스를 해 줬는데, 사람들을 급히 보내던 교통 감독관은 짜증났을 것 같아. 그래도 별로 차가 막히는 날은 아니어서 많이 미안하진 않았어. 우린 젊고, 사랑에 빠져 있다구. 그냥 우리만의 순간을 즐기게 해 줬으면 해.

셀프 키오스크 기계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가방에 태그를 단 다음에 무게를 재고 들여보내러 갔어. 근데 가방 무게가 10파운드나 초과돼서 너무 놀랐어. 내가 못 보는 사이에 누가 장난으로 벽돌이라도 넣어둔 걸까? 나는 짐 다시 싸는 구역으로 가방을 밀고 가서 옷가지들 사이를 뒤져 보기 시작했어. 젠장할, 우린 하와이에 가는 거였다고. 가방을 60파운드나 되게 만들 물건은 들어있지 않았어. 가방 싸는 구역에서 그저 멍하니 가방을 쳐다보며 서 있게 되더라. 가방을 내 머리 위로 올리고, 던져 보고, 팔을 쭉 뻗어 들어올릴 수도 있었어. 근데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거냐고?

나는 다시 가방을 닫고는 다른 구역으로 가방을 재러 갔어. 이번에는, 가방이 30파운드라고 나왔어. 보니까 내가 전에 있던 구역은 기계 고장이라면서 닫혀 있더라. 내가 다시 온 구역에 있던 직원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멈칫했어.

"어, 고객님의 비행편은 날씨 문제로 일정이 재조정되었습니다, Ms. ---."

"날씨가 안 좋다구요... 제가 거의 방금 비행정보랑 날씨를 체크하고 왔거든요. 확실한가요?" 나는 아까 일어난 가방 무게 문제 때문에 좀 민감해져 있었고 이번에도 비슷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어.

"네, 고객님. 제가 다시 조정해드릴 수 있는 비행편 중에 가장 빠른 건 내일 같은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에요."

이쯤 되니 어리둥절했어. 혼자 생각에 잠겼지.

"몇 분먼 기다려 주실래요? 누구한테 전화 좀 하고 올게요."

난 뒤에 손님이 먼저 도움을 받도록 옆으로 잠시 비키고는 남자친구한테 전화를 걸었어.

신호음이 세 번 울리자마자 남친이 전활 받았어. "어, 왜 그래? 뭐 잊고 안 가져간 거 있어?"

"아니..." 내가 들어도 우울한 목소리라 남자친구가 걱정된 표정을 짓는 게 상상이 갔어. "내가 타기로 했던 비행기가 날씨 때문에 취소됐대."

"뭐? 말도 안 돼. 기다려봐, 주차장에 차 좀 댈게."

몇 분간 주차를 하고 남친은 다시 말을 시작했어. "일단 다시 데리러 가기 전에 비행 정보좀 체크해 볼게."

다시 말이 멈췄어. "인터넷 사이트나 날씨 어플들을 아무리 봐도 네 비행기에 대한 험한 날씨 정보는 없어."

"고객서비스센터에 한번만 더 물어볼게, 알았지?" 핸드폰을 잠시 음소거 처리하려고 했지만, 남자친구가 대화를 들을 수 있도록 그냥 켜두기로 했어.

승무원은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했고, 상급 직원을 불러서 확실히 확인을 시켜 줬어. 심지어 그 직원도 세 번째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어 줬지.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행편을 재조정해 줘서 고맙다고 했어.

다시 전화를 받았을 때는 남자친구가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어.

"진짜 이상하네. 다시 가고 있어. 조금만 참아, 도착하면 문자해 줄게, 알았지?"

"고마워, 자기야. 정말로. 이 상황 너무 짜증난다..."

남자친구는 날 다시 차에 태웠고 집에 가면서 우린 비행기 취소와 가방 무게에 대해 얘기했어. 우린 그냥 농담을 하곤 노랠 틀고 따라 불렀어. 친구한테 전화해서 비행편 얘길 하려고 했는데 전활 받질 않더라. 아마 걘 자기 비행기에 이미 타서 도착해서야 전화를 받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어.

그 나중에서부터 상황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어.

난 낮잠을 잤어. (아침에 짐 싸려고 일찍 일어났거든.) 잠에서 깼을 땐 친구한테 온 부재중 전화 몇 통이랑 남자친구가 중국 음식을 포장해 오겠다고 쓴 쪽지를 볼 수 있었어. 친구가 남긴 음성 메시지를 들어 보니까 내 전화를 못 받은 게 분명하더라고.

"---야, 제발, 제발 전화 좀 받아. 뉴스 봤어...제발 그게 네 비행기가 아니었다고 해줘. 제발."

두 번째 메시지도 비슷했어. "제발, ---, 그낭...전화 좀 받아... 세부 정보를 공개를 안 해주고 있어. 제발 빨리 도착해줘. 제발..그냥..." 친구가 훌쩍이는 소리에 치직거리는 소리가 섞였어.

세 번째 음성 메시지는 굉장히 기분나빴어. 처음엔 몇 분 동안이나 아무 소리도 안 나다가 끝에서야 깊고 전자음 같은 목소리가 들렸어: "넌 우리한테 빚을 진 거다."

척추를 타고 소름이 끼쳐왔고 온몸의 피가 얼어버리는 것 같았어.

티비를 켰더니 바로 나오더라. 내가 타기로 했던 비행기가 바다 위에서 실종됐대. 그냥 사라져 버린 거야. 최근에 추락한 채로 구출되지 못한 비행기들이 막 생각나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 진짜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나? 아님 내가 망상을 하고 있는 건가?

무서워. 누가 날 쳐다보는 것 같고 편집증에 걸릴 것 같아. 내가 빚을 진 게 누군데?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고...왜 나인 건데?






안정을 찾기가 힘들어. 집에 있는 블라인드나 커튼은 전부 쳐 버렸어. 모든 문이 전부 잠겼는지도 세 번씩이나 확인했어. 이 모든 게 누군가의 장난이길 바라지만, 그게 아닌 걸 알아. 죄책감과 긴장이 들어. 빨리 남자친구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얘기할 수 있게. 이게 다 미친 악몽이 아니라는 걸 남자친구가 확인시켜줄 수 있게.

~

남자친구가 돌아왔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바로 맨발로 뛰쳐나갔어. 남친은 한 손엔 봉투를, 한 손엔 차키를 들고 있었어. 남친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음식 봉투를 뺏고는 거실로 남친을 밀었어. 티비에서 그 비행기 사고 소식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었거든. 남친은 입을 벌린 채 티비를 쳐다보더니, 고갤 돌려서 날 유령마냥 쳐다봤어.

고개를 천천히 젓고는 남친은 손을 뻗어 날 만져 봤어.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지. "네가 죽은 거면 어떡해...? 내가 미쳐 버린 거라면?"

남자친구의 얼굴은 공포 때문에 일그러져 있었고 나는 할 말을 잃었어. 마치 얼음물에 뛰어든 느낌이었어. 온몸이 충격에 휩싸였지. 남친이 만지는 촉감도, 내 몸이 떨리는 것도 느껴지지가 않았어. 내가 집중할 수 있던 단 한가지는 빨라지던 내 심장박동 뿐이었어.

나는 앉아서 핸드폰 잠금을 풀었어. 바보같게 들리겠지만, 누가 옆에 있어주기 전까진 친구한테 전화하기가 겁났어. 음성메시지 때문에 너무 겁을 먹어서, 전화했다가 아까 들은 목소리랑 연결되기라도 할까봐 혼자 걸기가 싫었어.

절친한테 전화하려고 걔 연락처를 눌렀어. 그런데 신호음이 가질 않더라. 그냥 이상하고 늘어지는 삐- 삐-소리만 날 뿐이어서 난 공포에 질렸지. 뭐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핸드폰을 소파 반대편으로 던져 버렸어.

남자친구는 천천히 정신을 차리는 것 같더니 날 보고 눈썹을 찌푸렸어. "뭐...?" 남친은 폰을 가리키며 물었어.

그 잠깐 사이에 난 결정을 내려야 했어. 남친한테 음성메시지에 대해 말해야 하나? 이 짐을 나누어야 할까? 아님 좀더 신중하게 행동해서, 그 소름돋는 메시지한테서 남친을 보호해야 할까?

난 후자를 택했어. 남자친구한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상황으로 밀어넣기엔 난 걜 너무 사랑해.

난 더듬거리며 설명했어... "이거..자-자꾸 이..이상..한..소리를 내."

남친은 확실히 그때까지도 겁에 질려 있었고, 내 이상한 행동에 대해 별로 눈치채질 못했어. 내가 바다 밑바닥 대신 여기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랬겠지.

몇 분 후에, 남친은 나를 껴안았어. 안도감, 감사함, 사랑, 그리고 날것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절박한 포옹이었어. 나도 똑같이 그를 안았고, 우린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그저 얽힌 상태로 있었어. 우리가 드디어 떨어졌을 때 남자친구는 내 이마에 뽀뽀를 하곤 부엌으로 갔어.

그때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어. 핸드폰 화면은 밝게 켜졌고 나는 전활 받기 위해 기어가서 폰을 잡아챘어. 친구가 건 전화이길 바라긴 했지만 누가 건 건지 알고는 있었어.

전화를 받았어. 그 전자음같은 목소리가 대답해 왔어:

"남자친구를 끌어들이지 않은 건 똑똑한 선택이었다. 이제 그는 계속 존재할 수 있다." 그 말 후 전화는 끊긴 것 같아 보였지만 난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핸드폰을 귀에 꼭 누른 채 있었더니 그 무서운 문장이 다시 들려왔어.

"넌 우리한테 빚을 진 거다." >

뭘 할 지도 모르는 채 난 내 방으로 들어갔어. 방에 뭐 이상한 점이 있나 하고 싹 훑어봤어. 침대 옆 탁자에는 여전히 내 로스쿨 교재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었어. 침대보도 여전히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불도 여전히 켜져 있었지. 심호흡을 쉬었는데, 그림자 하나가 내 눈가를 사로잡았어.

그래서는 안 됐어. 하지만 그래야만 했어. 그림자는 창문에 달린 커튼 뒤쪽에서 비치고 있었어. 커튼을 치워 버리곤 블라인드 사이를 살짝 열어 봤어.

순간 모든 바람을 내 폐로 들이마신 것 같았어. 우리 집과 이웃집 사이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어. 그는 입술을 꼭 다문 채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고 나한테 손가락으로 이리 오라는 제스쳐를 취했어.

나는 세게,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겨지게 될 그 남자의 모습이 사라지기만을 바랬어.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어. 나랑 눈이 마주치자 그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어:

"넌 우리에게 빚을 졌다."

난 커다랗게 훌쩍이기 시작하며 이 모든 게 생존자로서의 죄책감 때문에 보이는 환상이길 바랬어. 난 사실 그 전화에서의 남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라는 무언가한테 빚을 진 게 아니라고 말이야. 남자친구는 방으로 뛰어왔고, 초조한 채로 왜 그러냐고 물어왔어. 차마 말은 못하고, 대신 남친이 안아주는 동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기만 했어. 남자친구는 한 손으론 날 감싸고는 다른 한 손으로는 블라인드를 열어젖혔어. 나도 살짝 봤는데 남자는 가고 없었어. 잠깐이지만 안심이었지.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서로를 좀더 토닥여주고 나서는 우린 같이 침대에 들었어. 난 빨개진 눈을 크게 뜬 채 누워서 남자친구의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느려지고 규칙적으로 변하는 걸 들었어.

~

난 남자친구보다 몇 시간이나 더 깨어 있었는데, 결국 잠자길 완전히 포기해 버렸어. 일어나서 콘택트렌즈를 끼러 욕실로 향했지. 렌즈를 끼자마자, 핸드폰 화면이 밝게 빛났어. 또 발신자 정보 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온 거야. 다시 전화를 받았어.

"누구세요?"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전화에 대고 말을 뱉어냈어.

질문을 하자마자, 현관 벨이 울렸어. 난 핸드폰을 떨어뜨렸고 핸드폰은 화장실 바닥 타일에서 튕겨져 나갔어. 몸을 숙여 주웠더니 전화는 끊겨 있었어. 난 멍한 상태로 현관으로 갔지만, 창문 밖에 있던 그 남자가 문밖에 있다고 내가 뭘 할 건지도 몰랐어.

문에 다가가자마자, 커다란 노크 소리가 울렸어. 문에 달린 조그만 렌즈로 밖을 내다봤더니 경찰이었어. 난 곧바로 문을 열어서 어떻게 도와드릴지 물었어. 전화를 걸던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을 쫓아내주길 바라면서 말야.

" ---씨? 경찰서에 오셔서 비행기 ----에 대한 질문에 답을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저희가 가진 기록에 의하면 오늘 비행기에 타지 않으셨는데요...그 비행기가 12시간쯤 전에 실종됐습니다."

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어. 경찰한테 숨길 건 전혀 없으니까.

이 마지막 부분은 급하게 쓰고 있어. 방금 옷 갈아입고 양치질도 했어. 남자친구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말했어. 경찰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고. 이게 다 뭔지 좀 알아내면 바로 너네한테 알려줄게.






몇 시간 동안이나 경찰서에 있다가 이제야 집에 왔어.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빨리 눈치챈 거 같더라구. 그 비행기 사실 기계적 결함 때문에 연기될 뻔했는데 쉬쉬했다나봐.

계속 별거 없었는데 조사 마지막쯤에 나랑 얘기하던 경찰관이 말하길 FBI가 자기들이 수사를 맡겠다고 했대.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여겼어. 혹여 테러일 수도 있는 사고에 FBI가 개입하는 건 당연한 걸로 느껴졌거든.

심문실을 나가서야 그 남자를 봤어. 심문실 바깥 창문 앞에 서 있던 남자. 정장을 입고 있었고 꽤 중요한 사람 같았어. 그는 모두에게 집중하라고 했어. 그가 실종된 비행기에 대해 말하는 동안 경찰관들은 부지런히 메모를 하며 경청했지.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어.

몇 분 후 그는 연설을 마쳤고 나한테 걸어오기 시작했어. 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고 나를 씹어삼키는 공포에 시야는 흐려졌어.

"안녕하새요, Ms. ---. 여기까지 와 주신 것에 FBI를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나는 입을 벌리곤 그를 쳐다봤어. 그 꼭 다문 미소를 그는 지어 보였어. 내 남은 생 동안 따라다닐 그 미소ㅡ남은 생이 얼마나 긴지 짧은지는 상관없이 말야.

"아직도 충격에 빠져 계시겠군요, 물론 완전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비행기를 찾을 거라는 건 알고 푹 쉬셔도 됩니다. 모두에게 종결을 짓게 해 드릴 거예요."

나는 조용히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잠깐 동안만 저랑 나가 주시겠습니까, Ms. ---?"

나는 당황한 채 주위를 둘러봤어. 우리가 하는 대화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 보였지. 내가 좋다고 하든 싫다고 하든 상관없단 걸 알았어. 어차피 이 사람이랑 단둘이 얘기해야 했지.

"그-그러죠." 내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어. 살면서 내 목소리가 그렇게 줏대없이 들린 건 처음이었어.

그는 다시 웃으며 경찰서 뒷문으로 날 안내했고 내가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잡아 줬어. 그도 따라 나왔고, 분주한 건물 안에 비해 우리 둘은 계속 침묵을 지켰지.

남자는 마치 이게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상황인 양 빌딩 벽에 기댔어. 마치 비행기가 실종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야. 마치 어젯밤에 내가 창 밖에서 그를 못 본 것처럼 말이야.

우린 잠시 조용히 거기 서 있었어. 난 그가 대화를 시작하기만 기다렸어, 그저 아무 말이라도 하길 말야.

"당신은 꽤나 운이 좋은 여자예요." 그는 혼자 웃었어. "하나만 물어볼게요: 운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나요? 업은요? 운명은?"

난 그를 마주보려고 고개를 돌렸어. "믿고는 싶죠..."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하다가 말문이 막혀 버렸어.

남자는 처음엔 대답하지 않았어. 내 대답이 마음에 든 건지 아닌지 눈치채기가 어려웠지.

"흥미롭군요. 곧 다시 뵙죠, Ms. ---."

내가 뭘 말할 수 있기도 전에 그는 날 지나쳐 가 문을 열고는 경찰들과 수사관들 떼 사이로 사라져 버렸어.

잠시 기다리다가, 나도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서둘러 앞문으로 다시 나가곤 집으로 운전해 갔어.

~

내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남자친구가 질문을 쏟아대기 시작했어.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려고 애쓰긴 했지만, 님친도 내가 지친 걸 알아챘어. 그때도 아직 이른 오후였어서, 남자친구는 내가 낮잠을 자는 동안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다녀오겠다고 제안했어. 나는 고맙단 뜻으로 뽀뽀를 해 줬어.

그가 느가자마자, 핸드폰 화면이 밝게 빛났어. 소름돋는 목소리를 예상하며 전화를 받았지. 그런데, 아까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안녕하세요, Ms. ---. 잘 들어요. 당신은 XYZ로 갑니다. 당장 떠나세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다시 보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내가 대답할 수 있기도 전에 전화는 끊겼어.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 차키를 꺼내 빠르게 차에 탔어. 내가 멍청하게 굴고 있단 건 알았어. 피할 수 없는 일이란 것도 알았지. 내가 가던지, 그가 날 찾아오던지 둘 중 하나였어.

~

그가 알려준 장소에 도착해 주차하고 나서 난 평정을 되찾으려 노력했어. 하지만 그럴 시간을 30초도 주지 않은 채 보조석 문이 열렸다 닫혔고 경찰서에 있던 그 남자가 차 안에 나와 함께 앉았어.

그는 자신이 그림자라고 말했어. 비밀 정부의 일원이라고. 그리고 나는 이제 그들한테 빚을 졌다고. 난 이제 그들 중 하나가 될 거라고. 그들을 위해 일할 거라고.

"왜요? 왜 저죠?"

"당신에겐 잠재성이 있어요. 당신은 우리와 함께 이 짐을 지고 갈 수 있죠. 같이 말이에요."

그는 내 쪽으로 기대 뭔가를 속삭이고는 차에서 나가 빠르게 걸어가 버렸어.

난 멍한 상태로 운전해 갔어. 내 몸, 아님 내 생각, 아님 뭐든간에 통제권을 잃은 기분이었어. 내가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통제력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았어. 진정하려고 크게 혼잣말을 했는데, 이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헛될 뿐이었어. 내 눈 바로 앞에서 손가락 사이로 모든 게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어.

주변의 것들은 보이지도 않는 채로 집으로 비틀대며 들어갔어. 남자친구는 집에 없었어. 소파에 앉아서 이걸 쓰기 시작했지. 차라리 이럴 시간에 그냥 죽어버려야 될 것 같아.

무서워. 살아가야 한다는 게 무서워. 이런 식의 짐을 더 지고 살아가야 할 거라는 게. 영원히 말야. 난 이제 세상의 모든 미친 것들에 대한 지식을 어깨에 지게 된 아틀라스야.

핸드폰 화면이 켜졌어. 전화를 받았어.

깊은 전자음 목소리였어: "곧 너를 찾아갈 것이다. 아직 배울 게 많다."

난 내가 미쳐 버린 줄 알았어. 어쩌면 내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게 아닐까도 생각했어. 어쩌면 어제 그 비행기에 타지 않은 거에 대한 죄책감에 짓눌려 정신을 놔 버린 게 아닐까, 내 안의 어딘가가 깨져 버린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전부 말이 돼. 말이 된다구. 그들이 모든 걸 관리하고 있어. 그들은 모든 걸 알고 있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

문 밖에 누군가 있어

그들이 진짜라는 걸 내가 증명할 수 있어

조심해

밤의 스토커, 조디악 킬러, 도끼 살인마, 그것들 전부 다

]암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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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마지막에서 두 번째 줄의 원문은

The nigHt Stalker, the zODiac killer, the axemAn W it was all

였습니다.
대문자만 읽어서 조합해 보면 SHADOW, 즉 그림자가 되는 거죠. 비밀 정부 (cryptocracy)는 우리가 모르는 단체에 진짜 리더들이 숨어서 세상을 조종하고 있다는 괴담 혹은 음모론인데요. 주인공은 그들에게 끌려간 것 같죠! 아무래도 이게 글쓴이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네요.

중간에 나오는 아틀라스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을 인용한 것 같습니다. 신들에게 반항을 저질러 평생 하늘을 어깨에 지게 된 거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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